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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10의 게시물 표시

이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장자 외편 달생(達生)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 질그릇으로 내기 활을 쏘면 솜씨가 좋아 잘 맞는다. 띠쇠로 내기 활을 쏘면 주저하여 잘 안 맞게 된다. 황금으로 내기 활을 쏘면 마음이 혼란하여 전혀 안 맞게 된다. 그 재주는 마찬가지인데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외물만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모두 외물만 소중히 한다면 안에 있는 정신은 옹졸해지고 만다. 오쇼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번역했다. 궁수가 재미로 활을 쏠 때는 그의 온 기술을 다해서 쏜다. 만일 그가 청동으로 된 상패를 얻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어느새 신경이 예민해진다. 만일 그가 금상을 받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눈이 멀게 된다. 아니면 두 개의 과녁을 본다. 그는 그의 마음에서 이미 빗나가 있다. 그의 기술은 변함이 없으나 상이 그를 분열시킨다. 그는 근심한다. 그는 활 쏘는 일보다 이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그의 힘을 다 고갈시켜 버린다. [오쇼, 이겨야 할 필요]

신에 관한 논증

"Is God willing to prevent evil, but not able? Then he is not omnipotent. Is he able, but not willing? Then he is malevolent. Is he both able and willing? Then whence cometh evil? Is he neither able nor willing? Then why call him God?" "신은 악을 없애려 하나,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가능한데 행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하다. 그럴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런 존재라면 그를 뭐하러 신이라 부르는가?" -EPICURUS (기원전 3세기 경) 신이 전능하다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만인을 굽어보며 공정한 심판을 내리는 신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만든 세상에 무관심한 신이 더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