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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장자 외편 달생(達生)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 질그릇으로 내기 활을 쏘면 솜씨가 좋아 잘 맞는다. 띠쇠로 내기 활을 쏘면 주저하여 잘 안 맞게 된다. 황금으로 내기 활을 쏘면 마음이 혼란하여 전혀 안 맞게 된다. 그 재주는 마찬가지인데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외물만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모두 외물만 소중히 한다면 안에 있는 정신은 옹졸해지고 만다. 오쇼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번역했다. 궁수가 재미로 활을 쏠 때는 그의 온 기술을 다해서 쏜다. 만일 그가 청동으로 된 상패를 얻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어느새 신경이 예민해진다. 만일 그가 금상을 받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눈이 멀게 된다. 아니면 두 개의 과녁을 본다. 그는 그의 마음에서 이미 빗나가 있다. 그의 기술은 변함이 없으나 상이 그를 분열시킨다. 그는 근심한다. 그는 활 쏘는 일보다 이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그의 힘을 다 고갈시켜 버린다. [오쇼, 이겨야 할 필요]

신에 관한 논증

"Is God willing to prevent evil, but not able? Then he is not omnipotent. Is he able, but not willing? Then he is malevolent. Is he both able and willing? Then whence cometh evil? Is he neither able nor willing? Then why call him God?" "신은 악을 없애려 하나,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가능한데 행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하다. 그럴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런 존재라면 그를 뭐하러 신이라 부르는가?" -EPICURUS (기원전 3세기 경) 신이 전능하다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만인을 굽어보며 공정한 심판을 내리는 신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만든 세상에 무관심한 신이 더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초상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출마연설 중 일부 ...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나 먹고 살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배냇짓

기다려!

먹을 것이 있을때만 통하는 명령.. 기다려 정말 눈치빠른 사교성 좋은 믹키

해물떡찜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트랜드처럼 되어 버린 떡찜.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홍대앞에 들렀던 날. 맵기는 했지만 땀을 흘리면서도 열심히 먹었음.

한해를 마무리 하며